개.철.이

울면 안돼, 울면 안돼 2

chan's story 2007. 7. 22. 11:51
지금 내가 논하고 있는 캐롤의 정식 제목은 “산타할아버지 우리 마을에 오시네”이다.  좀 어색하지 않은가?  우리 인식 속에 이 노래의 제목은 “울면 안돼”이다.  살펴 보겠지만, 사실상 노래의 내용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 출시된 개그콘서트 캐롤 앨범을 보면 아예 제목이 “울면 안돼”로 되어 있다.  어째서 제목에 이런 혼선이 생겼을까?  귀찮지만 영어와 우리말 가사를 한 번 비교해보자.


똑순이 버전과 머라이어 캐리 버전도 비교해보고...
(똑순이 앨범은 1984년에, 머라이어 캐리 앨범은 1995년도에 발표되었다.)
 
산타 할아버지 우리마을에 오시네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울면
안돼 울면 안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애들엔
선물을 주신대
You better watch out
You better not cry
Better not pout
I'm telling you why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산타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오늘밤에 다녀가신대
때나 일어날
짜증낼 장난할 때도
산타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대
He's making a list
And checking it twice;
Gonna find out Who's naughty and nice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He sees you when you're sleeping
He knows when you're awake
He knows if you've been bad or good
So be good for goodness sake!

두 노래를 들어보면 참 신기하다.  똑순이로 들으면 영락없이 “울면 안돼”인데, 캐리로 들으면 흥겨운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이 쩌렁쩌렁 울린다.  곡의 포인트가 완전히 틀리다.  이처럼 완전히 다른 노래가 되어버린 데에는, 두 사람의 곡 해석과 전달 능력이 탁월한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1) 첫 구절을 보자.  영어의 권유적인 “better not cry"와 우리말의 명령조의 ”울면 안돼“.   이 뉘앙스의 차이가 두 노래의 결정적인 차이로 연결된다.  가락상 이 부분을 ”울지 않는 게 좋을거야“라는 식으로 길게 늘여 번역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한줄의 강압적인 어조의 번역으로 인해 두 노래의 차이는 되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2) 첫 대목의 영어 가사 분위기는 대충, “잘 봐봐, 안 우는게 좋을걸, 왜 그런지 알아? 산타 할아버지 오시거든.”  이렇게 될 것이다.  명백히 내용의 중심은 산타가 오는 데 있다.  그가 오는 것은 선물을 갖고 오는 축복의 이미지이며, 그래서 흥겹게 노래된다.
반면에 우리말 가사는 “울면 안돼”를 두 번이나 강하게 내세움으로써 부정의 뉘앙스를 극대화한다.  그리고 산타가 온다는, 이 노래의 주제에 해당하는 부분은 삭제되어 있다.  울면 국물도 없다는 부정문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3) 계속 영어 가사를 보자.  산타는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선물 줄 명단을 작성하고 검토한다.  그는 마을에 오고 있다.  누가 깨 있는지 아니까, 빨리 자거라, 착한 애가 되야지...  이런 화기애애하고 동화적인 분위기이다.
한글 가사는 산타가 오고 있다는 핵심은 밀려나 있다.  대신에 산타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 엄청나게 강조된다.  “잠 잘때나 일어날 때나”는 자나깨나라는 표어를 연상시키는 언제나라는 뜻으로 탈바꿈되어 산타의 능력을 강조하는 데 사용된다.

(4) 한글 가사에서 명단(list)은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가?  번역되지는 않았지만, 이 단어는 산타의 전지(omniscience)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 같다.  여기서의 명단은 최후의 심판 때 쓰이는 생명의 책(요한계시록) 비슷한 것으로 이해되었을 공산이 크다.  사실상 염라대왕이 사용하는, 착한 일과 나쁜 일에 대한 기록에 다름아니다.

(5) 산타가 온다는, 영어 가사에서는 주제에 해당하는 구절은, 한글 가사에 한 번 등장한다.  “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맥락에 상관없이 생뚱맞게 등장한다.  그것도 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녀가는 것이다.  모든 걸 알고 있다고 겁주다가, 다녀 간다고 한마디 쏘아 붙인다.  이건 선물 주러오는 산타가 아니라, 감찰관 산타이다.

(6) 영어 가사엔 산타가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선물 안준다는 얘기는 없다.  우리 산타는 훨씬 단호하다.  공과를 가려 선물을 주고 안주고를 결정한다.  “운다=선물 없다”라는 공식으로 단순화되어 후렴구로 계속 반복된다.
 
 
참으로 신기하다.  분명 우리 가사는 영어 가사의 내용을 옮기긴 옮겼다.  그런데 노래 내용은 영 딴판이다.  미국 산타는 기쁨 주러 오고 있는, 도깨비 방망이같은 산타이다.  우리 산타는 종말론적이다.  착한 아이 상주고 우는 아이 색출하여 선물 안주는 염라대왕 산타이다.  똑순이의 똑똑 부러지는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5공 때의 강압적인 정서가 물씬 풍겨난다.  착한 아이가 되라는 그 숱한 위선적인 교육 사이에 이 캐롤이 끼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국민교육헌장 읽는 것 같다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내가 고등학교 시절 이 노래를 종말론에 연결시켜 이해한 것은, 원곡의 입장에서 보면 오해이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한국 사람들, 이 노래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오버할 수밖에 없었던 거고.  영어엔 없는 부정문이 한글 가사엔 많이 사용된다.  그런 연유로 당시 나에겐 이 노래가 나쁜 아이, 즉 믿지 않는 자에 대한 강력한 경고로 읽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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